서울 노원구 3,300세대 대단지 아파트에 전세 물건이 단 1개.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눈을 의심했습니다. 다주택자 규제 이후 매매 시장은 일부 안정되는 듯 보이지만, 정작 당장 살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선택지 자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급이 막히면 구조가 먼저 흔들린다는 걸, 저는 이미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공급 감소, 숫자로 드러난 현실
서울 성북구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년 사이 약 88.8%가 사라졌습니다. 5,000건에 달하던 전세 물건이 최근 560건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성동구, 노원구, 광진구처럼 가격 대비 접근성이 좋아 실수요자들이 많이 찾던 지역일수록 감소폭이 더 큽니다.
KB부동산 데이터를 보면 이 흐름은 수치로도 선명하게 확인됩니다. 월간 아파트 전세 가격 지수(전세 가격 지수란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전세 가격의 변동을 수치화한 지표입니다)는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고, 월세 가격 지수도 함께 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월세 가격 지수란 시장 내 월세 가격의 평균적인 변동 방향을 나타내는 지수로, 이 지수가 동시에 오른다는 것은 전세만 부족한 게 아니라 임대 공급 자체가 줄었다는 신호입니다.
전세가율(전세가율이란 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의 비율을 의미합니다)은 역설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서울 기준으로 2021년 이후 전세가율이 꾸준히 내려가고 있는데, 이는 전세 가격이 떨어진 게 아니라 매매 가격이 훨씬 빠르게 올랐기 때문입니다. 전세는 오르고 있지만, 집값이 더 빠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는 셈입니다.
KB부동산 매물 증감 비교 데이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수치는, 지금 임대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출처: KB부동산).
임대 물건이 사라지는 구조적 이유
임대 공급을 담당하는 주체는 결국 민간, 즉 다주택자입니다. 이번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는 양도소득세 중과(양도소득세 중과란 다주택자가 주택을 매도할 때 일반 세율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입니다)와 보유세 강화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는데, 이 정책이 매매 물건을 일부 시장에 내놓게 하는 효과는 있었습니다. 강남권 일부 단지에서 매물이 쌓이고 가격이 하락한 것이 그 결과입니다.
문제는 다주택자가 집을 팔면 그 집에서 공급되던 임대 물건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제가 영업 현장에서 경험한 것도 비슷합니다. 거래처가 물건을 아예 거두기 시작하면 가격이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은 물건의 가격이 더 올라갑니다. 선택지가 줄어들수록 남은 물건의 협상력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주거는 자동차나 가전제품과 다릅니다. 구매를 미룰 수 있는 소비재가 아니라, 매달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필수재입니다. 그래서 임대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 반응이 훨씬 빠르고 민감합니다. 전세가 없으니 월세로 전환되고, 그 월세도 서울 외곽 기준으로 보증금 수억 원에 월 150만~200만 원이 기본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체감되는 핵심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주택자 매물 유도 정책 → 임대 공급 주체 감소
- 전세 매물 급감 → 전세 수요자의 월세 전환 가속
- 월세 수요 급증 → 월세 가격 동반 상승
- 임대차 시장 전반의 선택지 축소 → 실수요자 부담 증가
2025년 3월 기준, 서울 일부 지역 아파트 전세 매물은 전년 대비 80~9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중앙일보).
전세 가격 흐름,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합니다
"정책이 안정되면 전세도 좀 풀리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공급이 한 번 막히면 회복까지 시간이 꽤 걸립니다. 제가 건설 관련 일을 하면서 직접 경험한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분양 일정이 밀리거나 인허가가 늦어지면 당장은 조용해 보이지만, 2~3년 후에 공급 부족이 가격 상승으로 나타납니다. 전세 시장도 같은 구조입니다.
임대차 2법(임대차 2법이란 2020년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말하며, 세입자의 거주 안정을 위해 도입되었지만 임대 매물 감소를 가속화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의 효과가 걷히는 시점과 다주택자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지금의 공급 공백이 생겼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책의 방향 자체를 단순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단기적으로 실수요자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구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금 하반기 이사를 앞두고 있다면, KB부동산 앱에서 이사 희망 단지를 직접 검색해서 현재 전세 매물이 몇 건인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전세가 0건이라면 월세 전환을 미리 검토하고, 그 경우 보증금과 월세의 조합을 어떻게 설계할지 미리 시뮬레이션해 두는 것이 현실적인 대비 방법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부동산 투자 또는 임대차 조언이 아닙니다. 실제 계약이나 투자 결정 전에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