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가 나오기도 전에 공급업체 담당자가 먼저 물량을 조정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분명히 아직 최종 사인이 없는데, 현장은 이미 방향을 잡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주식 시장을 보면서 그때 그 느낌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협상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시장은 이미 '잘 풀릴 것'이라는 전제로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으니까요.

시장이 먼저 움직이는 이유, 선물 수급에 있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현장에서나 시장에서나 '확정'보다 '기대'가 먼저 가격을 움직입니다. 요즘 외국인 수급 흐름이 딱 그 패턴입니다. 현물 매수는 크지 않은데, 선물 쪽으로 하루 1조 원 이상이 들어오는 날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선물(Futures)이란 미래의 특정 시점에 자산을 사고팔기로 미리 약속하는 계약을 말합니다. 현물처럼 지금 당장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 방향에 베팅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에 여유가 없는 액티브 펀드와 달리, 헤지펀드(Hedge Fund)는 선물과 옵션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시장 방향을 먼저 잡아당길 수 있습니다. 헤지펀드란 다양한 파생상품 전략을 통해 시장 방향과 무관하게 수익을 추구하는 사모 펀드를 말합니다.
최근 흐름을 보면 외국인이 이틀 사이 선물을 1조 6천억, 5천억, 1조 2천억 순으로 순매수했습니다. 그리고 풋옵션(Put Option) 매도도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풋옵션 매도란 시장이 하락할 때 이익을 보는 포지션을 청산한다는 의미로, 쉽게 말해 '더 이상 하락을 기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이 조합은 포지션을 매도에서 매수로 완전히 돌렸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선행 신호는 꽤 정확합니다. 현장에서 원자재 조달 쪽 움직임만 봐도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행될지 가늠이 됩니다. 확정 공문보다 조달 부서 움직임이 항상 먼저였거든요. 지금 선물 수급은 그런 의미에서 꽤 의미 있는 신호입니다.
다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리스크도 있습니다. 선물 중심의 상승 구조는 프로그램 매수(Program Trading)를 동반하는데, 프로그램 매수란 선물 가격과 현물 가격의 차이인 베이시스(Basis)를 이용해 자동으로 현물을 사고파는 매매 방식입니다. 올라갈 땐 빠르게 가지만, 포지션이 꺾일 때는 반대로 빠르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기대가 현실을 앞질러간 만큼, 기대가 어긋날 때의 속도도 같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핵심 수급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외국인 선물 순매수 전환: 매도 포지션 → 매수 포지션으로 완전 전환
- 풋옵션 매도 증가: 하락 베팅 청산, 상방 전환 신호
- 프로그램 매수 유입: 선물 강세에 연동된 현물 매수 증가
- 현물 매수는 여전히 제한적: 포트 비중 부담으로 액티브 펀드 진입 어려운 구조
전쟁보다 호르무즈, 시장이 진짜 보는 변수
저는 현장에서 수십 개의 변수가 동시에 움직일 때, 결국 하나를 잡고 판단하는 게 맞더라고요. 원자재 가격이냐, 납기냐, 그 둘 중 하나가 전체 프로젝트를 좌우한다는 걸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됐습니다. 지금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이냐 종전이냐, 협상이 3차로 가느냐보다 시장이 집중하는 핵심 변수는 단 하나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느냐 안 열리느냐입니다.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이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협으로, 전 세계 원유 수출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 병목 지점입니다. 이 해협이 봉쇄되거나 개방되느냐에 따라 국제 유가(WTI 기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지금 국제 유가가 90달러 초반까지 내려온 이유도, 시장이 호르무즈 개방을 이미 어느 정도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2024년 기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보고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물동량은 하루 평균 약 1,700만 배럴에 달합니다(출처: 국제에너지기구 IEA). 이 숫자가 막히면 아시아 에너지 수입국들의 비용 구조가 통째로 흔들립니다. 반대로 열리면 비용이 내려가고, 기업 이익률 개선 기대가 주가에 바로 반영됩니다.
물론 제가 보기엔 이 부분이 지금 시장 해석의 가장 큰 한계이기도 합니다. 기대가 선반영됐다는 건, 기대가 틀렸을 때 되돌림도 빠르다는 뜻입니다. 협상이 부분 타결에 그치거나 3차 회담으로 넘어가면, 1차 결렬 당시처럼 단기 2~3% 조정이 올 수 있습니다. 다만 시장이 이미 이 패턴을 학습(Learning Effect)했다는 점에서, 하락 폭 자체는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습 효과란 반복적인 사건에 노출된 시장 참여자들이 동일한 이벤트에 점점 덜 반응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국거래소(KRX)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외국인 선물 순매수 전환 이후 코스피 지수는 단기 상승 흐름을 유지하고 있으며, 업종별로는 반도체와 자동차 대형주가 동시에 오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삼성전자, 현대차, 두산에너빌리티, 크래프톤 등 한동안 소외됐던 종목들이 같이 움직이는 건, 시장의 온기가 대형주에서 그 아래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에서 가장 위험한 건 기대가 확정인 줄 알고 올인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맞으면 크게 가고, 틀리면 빠르게 꺾이는 구조입니다. 시나리오 베팅 구간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시장은 확정된 상승이 아닙니다. 기대가 현실보다 앞서 달리는 구간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 여부, 선물 포지션 방향, 유가 흐름 이 세 가지를 같이 보면서 접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기대가 현실이 되면 시장은 더 갑니다. 하지만 기대가 어긋나면, 선물이 빠르게 방향을 바꿉니다. 그 둘을 동시에 인지하고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 지금 이 시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시장 분석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결과는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