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한동안 "지수가 버티면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꽤 위험한 착각이었습니다. 지수는 잠잠한데 종목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장, 지금이 딱 그런 구간입니다. 이란 협상 결렬, 트럼프 지지율 최저치 경신, 파업 이슈까지 악재가 쌓이는데도 시장은 무너지지 않고, 돈은 오히려 특정 섹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악재에 둔감해진 시장, 이게 정말 좋은 신호일까?
파키스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미-이란 4차 협상이 결국 불발됐습니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며칠 안에 이란 유정이 셧다운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습니다. 이란의 원유 저장 시설인 하르그섬 창고 용량이 한계에 달하고 있어, 물리적으로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는 시점이 다가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나스닥은 -0.5% 하락에 그쳤고, 코스피는 오히려 +0.4%로 마감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전쟁 뉴스 하나에 시장 전체가 흔들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 그 얘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란 이슈도 지금 그 경로를 따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악재에 둔감해지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걸 마냥 좋게만 보기가 어렵습니다. 시장이 리스크를 소화하고 있는 게 맞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과도한 낙관이 쌓이는 구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아무 뉴스에도 안 빠진다"는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가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집권 2기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1기 최저치였던 32%에 근접한 33%까지 내려온 상태입니다(출처: 갤럽).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정책 방향도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이 변수는 아직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2차전지와 나트륨이온배터리, 섹터가 드디어 통째로 움직였다.
제가 직접 시장을 지켜보면서 느낀 결정적인 변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최근까지 2차전지 섹터는 삼성SDI나 LNF 같은 셀 대장주 일부만 올라가고, 에코프로 그룹주나 장비·부품주는 꿈쩍도 않는 구조였습니다. 이렇게 일부만 올라가는 장에서 "2차전지가 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포스코퓨처엠이 박스권을 돌파했고, 신흥SEC나 상신EDP 같은 부품주, PNT나 엠플러스 같은 장비주까지 함께 올라갔습니다. 섹터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것입니다.
이 흐름을 촉발한 재료 중 하나가 CATL의 슈퍼테크데이 발표였습니다. CATL은 LFP 배터리 기반의 초고속 충전 기술을 공개했는데, 배터리 잔량 10%에서 98%까지 충전하는 데 6분대가 걸린다는 수치를 제시했습니다. LFP 배터리란 리튬인산철(Lithium Iron Phosphate)을 양극재로 사용하는 배터리로, 에너지 밀도는 다소 낮지만 안전성과 수명, 원가 경쟁력이 뛰어납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기술이 연구소 단계가 아니라 1년 안에 상용화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트륨이온배터리 양산 계획까지 더해지면서 시장 반응이 컸습니다. 나트륨이온배터리란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에서 리튬 대신 나트륨을 에너지 저장 매체로 사용하는 차세대 배터리입니다. 나트륨은 지구상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원소로, 같은 무게 기준으로 리튬 대비 가격이 수십 분의 일 수준입니다. 충전 속도와 안전성 측면에서도 이론적으로 유리한 부분이 있어, 저가형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채택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재료로 애경케미칼이 장중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이 메르세데스-벤츠에 LFP 배터리를 처음 공급한다고 공식화했습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LFP를 자동차 분야에 공급하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이번 섹터 순환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셀 대장(삼성SDI)에서 소재·부품·장비주까지 수급 확산
- 전고체 배터리 관련주(이수스페셜티케미칼 등) 동반 상승
- 나트륨이온배터리 테마(애경케미칼, PKC 등) 신규 부각
- 폐배터리 관련주(성일하이텍 등) 동반 강세
섹터 순환이 활발한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이것이 동시에 "단기 자금의 빠른 이동"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경험상 이런 구간에서 뒤늦게 쫓아가다 물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개인 투자자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장의 구조
솔직히 이런 장이 가장 어렵습니다. 지수는 크게 안 움직이는데, 종목별 움직임은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코스닥 종합지수가 +0.3%에 머문 날, 2차전지 ETF는 강하게 오르고 바이오 ETF는 하락했습니다. 두 섹터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지수가 상쇄된 것입니다.
코스닥 지수 구조를 생각하면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코스피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듯, 코스닥에서는 바이오 섹터가 시가총액 비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시가총액 가중 방식의 지수 계산상, 바이오가 눌리면 다른 섹터가 아무리 강해도 지수는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직접 분봉을 보면서 확인했을 때도, 2차전지 ETF가 오전 내내 올라가는 구간에서 코스닥 종합지수는 오히려 내려가는 흐름이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여기에 바이오 섹터의 악재가 겹쳤습니다. 로킷헬스케어 발모제 관련 임상 데이터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국내 코스닥 시총 상위권 종목의 특허 및 데이터 신뢰성 논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바이오 섹터에서 임상 데이터(Clinical Trial Data)란 신약이나 치료기기의 효능과 안전성을 사람에게 직접 실험하여 수집한 결과물로, 이것이 흔들리면 기업 가치 자체가 재평가받게 됩니다.
반면 호재도 있었습니다. 일라이릴리가 인비보 카티(In Vivo CAR-T) 기술을 보유한 켈로니아 테라퓨틱스를 최대 70억 달러, 한화 약 10조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인비보 카티란 기존 카티(CAR-T) 치료제가 환자의 면역세포를 직접 채취해 외부에서 가공한 뒤 다시 주입하는 방식인 것과 달리, 약물만 주사해도 체내에서 직접 면역세포가 활성화되는 차세대 항암 기술입니다. 이 소식은 국내 인비보 카티 연구 기업인 앱클론을 비롯한 관련주에 수급 유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지수 안정 = 내 포트폴리오 안정"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정확히 그 실수를 했습니다. 지수 방어가 되니 버텼는데, 막상 제가 들고 있던 종목은 섹터 소외로 한 달 내내 밀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거래소가 발표하는 섹터별 수익률 데이터를 보면 같은 기간 코스닥 내에서도 섹터 간 수익률 편차가 수십 퍼센트에 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방산 섹터에서도 의미 있는 재료가 나왔습니다. 해안 접근 고속정을 요격하는 단거리 유도 무기체계인 비궁이 미국 국방부 공식 예산안에 포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또 현대중공업의 엔진 사업부가 미국 데이터센터에 6,200억 원 규모의 20MW급 힘센 엔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도 시장을 자극했습니다. 힘센 엔진이란 현대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중속 디젤·가스 엔진 브랜드로, 발전설비와 선박 추진에 두루 쓰입니다.
지금 시장은 단 한 가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전체가 좋아서 다 같이 오르는 장이 아니라, 어떤 곳에 돈이 모이는지를 빠르게 읽어야 하는 장이라는 것입니다. 선택을 잘하면 수익이 크지만, 방향을 한 번 잘못 잡으면 지수는 버텨도 내 계좌는 빠지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 시장을 쉽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섹터가 구조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단순한 테마성 이동인지를 구분하는 시각이 지금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반드시 본인의 책임 하에 하시기 바랍니다.